책소개
라마르틴, 비니, 위고와 함께 프랑스 낭만주의 4대 시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뮈세는 그중 가장 나이가 어리고 시인으로 등단한 시기도 가장 늦다. 하지만 분방한 상상력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언제나 참신하고 진실하게 사랑을 노래한 뮈세는 낭만주의 시인 가운데 가장 ‘시인다운 시인’이라 일컬어진다.
시란 아름다운 어휘들의 조합과 음악적 운율의 연쇄라고 주장한 위고와는 달리, 뮈세는 선배 낭만주의 시인들이 읊조리고 있는 감상이란 샤토브리앙이 창조한 ‘근대적 우울’의 표상을 흉내 내는 유행일 뿐, 진정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시인 자신의 격렬한 체험의 기록이 아니라며 비난했다. 그는 그런 열정적인 시를 쓰기 위해 생생한 정열에 목말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인과의 사랑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뮈세는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 채, ‘여인과의 사랑’이라는 위험한 독배를 들게 되었다. 그가 열여덟 살 때 첫 정부인 후작 부인 아나이스 보지오에게 섣불리 진심을 허락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며, 사랑의 배신에 두려워 떨며 순수를 포기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스물세 살 때인 1833년에 여성 문인 조르주 상드를 만나면서 뮈세는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격렬한 정열을 찾는 데 성공했지만, 2년이 채 되지 않아 파경을 맞음으로써 혹독한 절망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하여 뮈세는 1835년부터 2년여에 걸쳐 그가 주장해 오던 진정한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5월의 밤>, <12월의 밤>, <8월의 밤>, <10월의 밤> 등 4편의 연작시다. 그중 가장 마지막에 집필된 <10월의 밤>이 가장 아름다운 시인데, 뮈세는 절망에서 벗어나 평정을 되찾아 가는 과정을 뮤즈와 시인과의 절창(絶唱)에 담아냈다. 밤의 시편들은, 뮈세가 장난기 넘치는 어린 시인에서 근엄한 시인으로 성장했음을 확인해 주고 있으며,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과 이별에 바치는 그의 엘레지는 1841년에 발표한 <추억>으로 끝을 맺는다.
1847년 11월에 그의 연극 <변덕>이 공연에 성공한 뒤에야 나머지 희곡 작품들과 더불어 시 작품들도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낭만주의 유파의 변방에 머물렀던 데다가 제자를 두지 않은 탓에, 그와 같은 뜻밖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뮈세의 시는 자칫 역사 속에 묻힐 뻔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등장한 젊은 작가들은 영혼의 가장 다감한 경험들의 미세한 분석을 대표하는 이 위대한 시인의 진가를 바르게 평가하고 있다. 에밀 졸라는 친구 폴 세잔과 젊은 시절에 함께 낭만주의 시인들 중 특히 뮈세에 열광하면서 시를 썼고, 평소에 뮈세를 ‘일상생활의 영웅’으로 숭배하던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곳곳에서 뮈세의 시를 인용하고 있었다. 또한 초현실주의 시인 루이 아라공은 그 자신이 쓴 <5월의 밤>에서 뮈세를 기리고 있다. 독일의 저명한 작가이자 언론인인 폴 린도(Paul Lindau)는 뮈세 사후 20주년을 기념해 1877년에 출간한 그의 연구서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t)≫에서 영국과 독일에서의 뮈세에 대한 평가를 상세히 소개했는데, 영국 문단에서는 언제나 느낌의 진실을 추구한 뮈세를 영국의 문호 셸리나 테니슨과 견줄 만한 프랑스 최고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독일 문단에서는 괴테 이후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 일컫는 하이네가 뮈세를 프랑스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찬양했다고 쓰고 있다.
200자평
프랑스 낭만주의 4대 시인 중 ‘가장 시인다웠던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 그는 평생 격정적인 사랑을 추구했고, 그 격렬한 체험을 시로 기록했다. 사랑의 고통과 승화를 통해 영혼의 순수를 길어 내는 그의 시는 사랑에 고뇌하는 우리에게 인생의 심연을 보여 준다.
지은이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t)는 1810년 12월 11일 파리의 문인(文人) 귀족 집안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와 외조부 모두 시인이었으며, 고급 관료인 그의 아버지는 루소 전문가로서 22권 분량의 ≪루소 전집≫을 직접 출간했다. 어린 시절의 뮈세는 그렇게 자연히 문학적 소양과 함께, 예술, 그리고 루소의 자유로운 사상에 동화된 귀족 자제로 성장해 갔다.
열아홉 살 때인 1897년, 친구 폴 푸셰의 소개로 빅토르 위고의 문학 클럽인 세나클(Cénacle)과 샤를 노디에의 문학 살롱에 입문해 낭만주의 유파에 합류했다. 그는 1830년 1월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글들을 모은 처녀시집 ≪스페인과 이탈리아 이야기(Contes d’Espagne et d’Italie)≫를 발표함으로써 장래가 촉망되는 낭만주의 신인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오데옹 극장의 무대에 오른 그의 첫 희곡 <베네치아의 밤(La Nuit vénitienne)>이 공연 이틀 만에 처참한 실패로 끝나자, 그때부터 상연을 전제로 하지 않은 독서용 희곡의 집필에 만족해야 했다.
1831년 7월, 뮈세는 ≪파리 평론(Revue de Paris)≫에 <라파엘로의 은밀한 생각>이란 제명의 시를 실어 보수적 논객들의 편협한 취향과 더불어 기교를 중시하는 낭만주의 문인들의 시작(詩作) 태도를 조롱하는 ‘문학 선언’을 발표했으며, 1832년 마침내 위고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위고가 주도한, 사회적 이념을 추구하는 낭만주의 시에 반기를 든 뮈세는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같은 해 출간된 그의 둘째 시집 ≪안락의자에서 보는 연극(Un spectacle dans un fauteuil)≫은 겨우 생트뵈브와 한두 신문에서의 호평을 이끌어 냈을 뿐, 평단의 고의적인 악평과 냉담한 외면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나 1838년 10월, ‘7월 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 필리프의 왕세자이자 그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페르디낭 필리프의 배려로 뮈세는 내무부 도서관 사서로 임명되었다. 1845년에는 문학적 공훈을 인정받아 발자크와 함께 레지옹 도뇌르 기사(Chevalier de la Légion d’Honneur) 훈장을 받았다. 1847년 11월에는 뮈세의 희곡 <변덕>이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뮈세의 이른바 독서용 희곡 작품들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고, 더불어 그의 시도 함께 주목받게 되면서 뮈세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시인으로 부상했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내무부 도서관 사서 직위를 박탈당했지만 곧 나폴레옹 3세가 주문한 희곡을 집필하는 황실 작가가 되었고 1852년 2월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으며, 이듬해 3월 교육부 도서관 사서에 임명됨으로써 공직을 회복했다.
1857년 심장판막증 증세, 그리고 알코올 중독과 방탕한 여성 편력으로 심각해진 그의 건강은 결핵을 앓게 되면서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마침내 그해 3월 2일 새벽녘, 쓸쓸하게 영면에 들었다.
옮긴이
윤세홍은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문학 공부를 하고자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7대학에서 불어학 학사, 그리고 석사 학위를 받은 다음, 파리 4대학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빅토르 위고의 시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98년부터 창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 문학·문화 강의를 맡고 있다. 빅토르 위고 외에도 폴 베를렌의 시적 예술성에 관한 여러 연구 논문들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의 본령을 찾아 알프레드 드 뮈세로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불시 강의≫, ≪프랑스 사회와 문화≫가 있으며, 역서로는 ≪프랑스 설화 여우 이야기≫, ≪위고 시선≫, ≪베를렌 시선≫, 주요 논문으로는 <빅토르 위고의 ‘새로운 시구(詩句)’의 이론과 실제>, <빅토르 위고의 ‘혁명적 각운’의 실제>, <빅토르 위고의 ‘새로운 성서’>, <베를렌 시의 회화성>, <베를렌의 음악적 시>, <베를렌 시의 현대성> 등이 있다.
차례
제1부 이국 여행기
마드리드
융프라우에 바치는 시
베네치아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형에게
알프스 산맥의 추억
라인 강에 바치는 시
귀향
제2부 환상의 노래
달에 바치는 발라드
베틴의 칸타타
환상
미카렘(Mi-Carême)
실비아
티치아노의 아들에게 바치는 소네트
안녕히
나의 감옥
마르슬린 수녀에게 바치는 시
마리 노디에 부인에게 바치는 소네트
어느 파리 여성에게 해 주는 충고
카롤린 타테 부인에게 바치는 시
꿈
테니 부인에게 바치는 시
제3부 청춘 연가
기상(起床)
페파에게 바치는 시
주아나에게 바치는 시
한 송이 꽃에 바치는 시
쓰라린 고통이라 할지라도
예전에
기억해 주세요
궂은 날씨에
안녕히, 쉬종
니농에게 바치는 시
에메 달통에게 바치는 시
제4부 문학과 우정
내 친구 에두아르 부셰에게 바치는 시
내 친구 알프레드 타테에게 바치는 시
생트뵈브에게 바치는 시
즉흥시
실패한 어느 밤 공연
빅토르 위고 선생에게 바치는 시
윌릭 귀탱게에게 바치는 시
보람 없는 기원들
독자에게 바치는 소네트
지난 세기의 어느 아이의 고백
제5부 진혼곡
나폴레옹
잔 다르크
뤼시
라 말리브랑에게 바치는 시
제6부 고통과 기도
5월의 밤
12월의 밤
8월의 밤
10월의 밤
조르주 상드에게 바치는 시
추억
슬픔
내 죽음의 시간
하느님께 바라는 소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기억해 주세요
−나를 잊지 마세요(모차르트의 음악에 붙인 가사)
근심에 찬 새벽이
황홀한 제 궁전을 태양에 열어 줄 때, 기억해 주세요.
생각에 잠긴 밤이
은빛 베일을 쓰고 꿈을 꾸며 지나갈 때, 기억해 주세요.
숲 속에서,
당신의 가슴이 두근거릴 때 기쁨이 부르는 소리에,
어둠이 당신을 초대할 때, 저녁의 달콤한 꿈에
속삭이는 누군가의 이 목소리를 들어 보세요.
“기억해 주세요.”
운명이 나를
당신에게서 영원히 떼어 놓게 될 때, 기억해 주세요.
슬픔, 이별, 그리고 세월이
절망한 이 마음을 시들게 만들 때.
내 슬픈 사랑을 생각해 주세요! 지고한 작별을 생각해 주세요!
우리가 사랑할 때는, 부재(不在)도, 시간도 중요한 게 아니랍니다.
내 심장이 뛰는 한,
내 심장은 언제나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기억해 주세요.”
상처 입은 내 가슴이
추운 땅 밑에서 영원히 잠을 잘 때, 기억해 주세요.
외로운 꽃이
내 무덤 위에서 천천히 피어날 때, 기억해 주세요.
난 이제 당신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불멸의 내 영혼은
변치 않는 누이처럼 당신 곁으로 되돌아올 겁니다.
밤마다 신음하는
누군가의 이 목소리를 들어 보세요.
“기억해 주세요.”